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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秦寺僧景淨述
粵若。常然眞寂。先先而無元。窅然靈虛。後後而妙有。總玄摳而造化。妙衆聖以元尊者。其唯我三一妙身無元眞主阿羅訶歟判。十字以定四方。鼓元風而生二氣。暗空易而天地開。日月運而晝夜作。匠成萬物然立初人。別賜良和令鎭化海。
渾元之性虛而不盈。素蕩之心本無希嗜。洎乎娑殫施妄。鈿飾純精。間平大於此是之中。隙冥同於彼非之內。是以三百六十五種。肩隨結轍。競織法羅。或指物以託宗。或空有以淪二。或禱祀以邀福。或伐善以矯人。智慮營營。恩情役役。茫然無得。煎迫轉燒。積昧亡途久迷休復。
於是我三一分身景尊彌施訶。戢隱眞威。同人出代。神天宣慶。室女誕腥於大秦景宿告祥。波斯睹耀以來貢。
圓二十四聖有說之舊法。理家國於大猷。設三一淨風無言之新敎。陶良用於正信。制八境之度。鍊塵成眞。啓三常之門。開生滅死。懸景日以破暗府。魔妄於是乎悉摧。棹慈航以登明宮。含靈於是乎旣濟。能事斯畢。亭午昇眞。經留二十七部。張元化以發靈關。法浴水風。滌浮華而潔虛白。印持十字。融四照以合無拘。
擊木震仁惠之音。東禮趣生榮之路。存鬚所以有外項削頂所以無內情。不畜臧獲。均貴賤於人。不聚貨財示罄遺於我。齋以伏識而成。戒以靜愼爲固。七時禮讚。大庇存亡。七日一薦。洗心反素。眞常之道。妙而難名。功用昭彰。
强稱景敎。惟道非聖不弘。聖非道不大。道聖符契。天下文明太宗文皇帝。光華啓雲明聖臨人。大秦國有上德。曰阿羅本。占靑雲而載眞經。望風律以馳艱險。貞觀九祀至於長安帝使宰臣房公玄齡總仗西郊賓迎入內。翻經書殿。問道禁闈。深知正眞。特令傳授。
貞觀十有二年秋七月。詔曰道無常名。聖無常體。隨方設敎。密濟群生。大秦國大德阿羅本。遠將經像來獻上京。詳其敎旨。玄妙無爲。觀其元宗。生成立要。詞無繁說。理有忘筌。
濟物利人。宜行天下。所司卽於京義寧坊造大秦寺。一所度僧二十一人。宗周德[■/(口*口)/亡]。靑駕西昇。巨唐道光。景風東扇。旋令有司將帝寫眞轉摸壁。天姿汎彩。英朗景門。聖跡騰祥。永輝法界。
案西域圖記及漢魏史策。大秦國南統珊瑚之海。北極衆寶之山。西望仙境花林。東接長風弱水。其土出火綄布․返魂香․明月珠․夜光璧。俗無寇盜。人有樂康。法非景不項主非德不粒土宇廣[澗-日+舌]。文物昌明。
高宗大帝。克恭纘祖。潤色眞宗。而於諸州各置景寺。仍崇阿羅本爲鎭國大法主。法流十道。國富元休。寺滿百城。家殷景福。
聖曆年。釋子用壯。騰口於東周。先天末。下士大笑。訕謗於西鎬。有若僧首羅含․大德及烈․並金方貴緖․物外高僧。共振玄網。俱維絶紐
玄宗至道皇帝。令寧國等五王親臨福宇建立壇場。法棟暫橈而更崇。道石時傾而復正。天寶初。令大將軍高力士送五聖寫眞寺內安置。賜絹百匹。奉慶睿圖。龍髥雖遠。弓劍可攀。日角舒光。天顔咫尺。三載大秦國有僧佶和。瞻星向化。望日朝尊。詔僧羅含僧普論等一七人。與大德佶和。於興慶宮修功德。於是天題寺牓。額戴龍書。寶裝璀翠。灼爍丹霞。睿扎宏空。騰淩激曰。寵[來/貝]比南山峻極。沛澤與東海齊深。道無不可。所可可名。聖無不作。所作可述
肅宗文明皇帝。於靈武等五郡。重立景寺。元善資而福祚開。大慶臨而皇業建
代宗文武皇帝。恢張聖雲從事無爲。每於降誕之辰。錫天香以告成功。頒御饌以光景衆。且乾以美利故能廣生。聖以體元故能亭毒
我建中聖神文武皇帝。披八政以黜陟幽明。闡九疇以惟新景命。化通玄理。祝無愧心。至於方大而虛。專靜而恕。廣慈救衆苦。善貸被群生者。我修行之大猷。汲引之階漸也。
若使風雨時。天下鼎人能理。物能淸。存能昌。歿能樂。念生響應。情發目誠者。我景力能事之功用也。大施主金紫光祿大夫。同朔方節度副使。試殿中監。賜紫袈裟僧伊斯。和而好惠。聞道勤項遠自王舍之城。聿來中夏。術高三代。藝博十全。始效節於丹庭。乃策名於王帳。中書令汾陽郡王郭公子儀。初總戎於朔方也肅宗俾之從邁。雖見親於臥內。不自異於行間。爲公爪牙。作軍耳目。能散祿賜。不積於家。獻臨恩之頗黎。布辭憩之金罽。或仍其舊寺。或重廣法堂。崇飾廊宇。如翬斯飛。更效景門。依仁施利。每歲集四寺僧徒。虔事精供。備諸五旬。餧者來而飯之。寒者來而衣之。病者療而起之。死者葬而安之。淸節達娑。未聞斯美。白衣景士。今見其人。願刻洪碑。以揚休烈。
詞曰眞主無元。湛寂常然。權輿匠化。起地立天。分身出代。救度無邊。日昇暗滅。咸證眞玄
赫赫文皇。道冠前王。乘時撥亂。乾廓坤張。明明景敎。言歸我唐。翻經建寺。存歿舟航。百福偕作。萬邦之康
高宗纂祖。更築精宇。和宮敞朗。遍滿中土。眞道宣明。式封法主。人有樂康。物無災苦
玄宗啓腥克修眞正。御牓揚輝。天書蔚映。皇圖璀璨。率土高敬。庶績咸熙。人賴其慶
肅宗來復。天威引駕。聖日舒晶。祥風掃夜。祚歸皇室。祅氛永謝。止沸定塵。造我區夏
代宗孝義。德合天地。開貸生成。物資美利。香以報功。仁以作施。暘谷來威。月窟畢萃
建中統極。聿修明德。武肅四溟。文淸萬域。燭臨人隱。鏡觀物色。六合昭蘇。百蠻取則。
道惟廣兮。應惟密强。名言兮演三一主能作兮臣能述。建豐碑兮頌元吉
大唐建中二年歲在作噩太蔟月七日大耀森文曰建立
時法主僧寧恕知東方之景衆也
朝議郎前行台州司士參軍呂秀巖書
助撿挍試太常卿賜紫袈裟寺主僧業利
撿挍建立碑僧行通
僧靈寶僧內澄僧光正 僧和明僧立本僧法源 僧審愼僧寶靈僧玄覽 僧景通老宿耶俱摩僧明一 僧保國僧志堅僧義濟 僧玄德僧利用僧元□ 僧奉眞僧至德僧和光 僧景福僧太和僧崇德 僧德建僧去甚僧廣德 僧福壽僧□□僧寶達 僧□明僧和吉僧□□ 僧遙□僧日進□□輪 僧[這-言+(衣-■)]和僧崇敬僧惠通 僧□□□居信僧文貞 僧文明僧昭德僧曜原 僧仁□僧玄眞僧明泰 僧利□僧敬德僧元□ 僧乾□僧守一僧光□ 僧聞順僧普濟僧凝□ 僧沖和僧英德僧靈德 僧靈壽僧還淳□敬眞
後一千七十九年咸豐己未武林韓泰崋
來觀幸字畫完整重造碑亭覆焉惜故友
吳子苾方伯不及同遊也爲悵然久之
아, 항시 참眞이시고 정숙하시어 태초부터 계시니 시원始原이 없고, 심원하시고 영통靈通하시어 영원히 계시니 신묘영철神妙英哲하시며, 신비의 추기를 총람하시어 창조화육하시고, 중인과 성자 모두에게 영묘를 부여하시는 본래의 지존자 이시며, 유일한 삼위일체의 묘신其唯我三一妙身이시며 영원자존하시는 참된 주는 오로지 아라가阿羅訶YHWH야훼Alaha,Alohe이시다. 십자가로 사방을 정하시고 근본인 영력을 고무하시어 양성을 산생시키시었다. 어두운 하늘이 바뀌어 천지가 열리고 일월이 움직여 주야가 작동하듯 주께서는 만물을 가꾸어 이룩되게 하시고 최초의 인간을 창조하시었다. 특히 인간에게 양지와 천화를 하사하시어 보옥진기가 바다처럼 성하게 하시었다.
원래 인간의 크고 원만한 본성은 겸허하여 교만함이 없었고, 소박하고 넓은 마음은 갈구나 욕심이 없었으나 사탄娑殫이 미망迷妄을 주어 시행케하므로 순진한 마음이 허위로 꾸며져 신과 평등하다거나 오히려 더 위대하다는 자족망상自足妄想으로 이간離間되고, 신과 같이 심원하다는 비의非義로 원격遠隔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365종의 인간이 나타나 각자 제 길을 따라 결합하게 되었고, 서로가 앞을 다투어 법망을 만들었나니 혹자는 서물庶物을 종주宗主로 지정해 신앙하고, 혹자는 기도와 제사로 복을 받고자 하며, 혹자는 위선을 자긍自矜하여 타인에게 교만하니 모두가 간지奸智와 사려思慮로 전전긍긍하고 사색과 감정으로 동분서주하지만 막연할 뿐 소득이 없다. 급기야는 초조함에 짓눌려 소진燒盡해 버리고 암매暗昧가 쌓이는 속에 갈 길을 잃고 영원히 혼미에 빠져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우리의 삼위일체의 분신分身인 경대지존景大至尊하신 메시아彌施訶께서 참된 위엄을 감추시고 인간과 동일한 육신으로 강림同人出代하시고, 천사가 경사를 선고하시사 처녀室女가 대진에서 성주聖主를 낳으시었다. 밝은 별빛이 상서를 고하듯 페르시아인波斯들이 서광에 인도되어 내공來貢하였다.
그이는 24성聖이 설한 구약 율법舊法을 완성하시어 나라와 가정에 대도大道를 마련하시고 삼위일체의 정화와 형언할 수 없는 신교新敎를 설파하시었다. 그이는 양심을 도야케 하여 바른 믿음을 갖게 하시고 천국 팔복八境之度의 법도를 제정하시어 하찮은 속세를 연마하여 참되게 하시고 삼상三常;信望愛의 문을 계도하여 사멸死滅을 멸해 영생토록 하시고 밝은 햇빛을 비추어 어두운 곳을 파하시니 마귀의 미망은 좌절되고 말았다. 자비의 방주方舟를 요동시켜 인간을 천궁天宮에로 오르게 하시니 영혼을 가진 자 모두 구원받게 되었다. 그이께서 이러한 일을 마치시니 마냥 정오에 진리가 떠오르는 것만 같다. 그이께서는 성경27부를 남기시고 조화造化를 펼치시어 영혼의 문을 열고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헛된 정욕을 씻어버림으로써 결백한 인격을 갖추게 하시고, 인출印出한 십자가로 사방을 조명하시어 구애 없이 모두를 합치게 하시었다.
목탁木鐸을 두드림은 은혜를 전파하는 복음이고, 동쪽을 향해 예배함은 영생영화永生榮華의 길로 나아감이고, 수염을 기름은 외모를 보존함이고, 머리를 삭발함은 내정內情이 없음을 나타냄이다. 노비를 두지 않음은 인간이 귀천 없이 평등함을 말함이고, 재화를 축적하지 않음은 사재私財를 남기지 않도록 함이다. 정결淨潔,齋은 독거獨居와 명상으로 이루어지고 계율은 정숙과 근신으로 고정되나니 일곱 시마다 예찬을 드려 산 자와 죽은 자를 비호하고 7일마다 한 차례씩 예물을 올린다.
항시 마음을 씻어 정결하게 하는 이 참된 길은 신묘하여 이름하기 어려우나 그 효용이 밝게 나타나므로功用昭彰 경교라 칭하게 되었다.
무릇 도道란 성자聖者 없이는 홍통弘通될 수 없고, 또한 성자도 도 없이 위대해질 수 없을진대, 도와 성자가 상호 계합契合함으로써 천하는 비로소 문명하게 된다. 태종 황제께서 나라를 빛내시고 국운을 개척하시며 명철한 성인으로 백성을 다스릴 즈음에 대진에 아라본阿羅本Alopon이란 대덕이 있어 청운의 꿈을 안은 채 참된 경전을 가지고 바람의 조화를 기대하며望風律 험로를 달려 정관9년 장안에 도착하니 황제는 재상 방현령房玄齡과 의장대를 서교에까지 보내 융숭하게 궁내로 영입하고 궁내에서 성경을 번역하도록 하시었다. 황제는 내전에서 그 도를 물어 참됨을 깊이 인지하시어 전수傳受토록 특명을 내리시었다.
정관貞觀 12년 가을 7월에는 조서를 내려 아뢰시기를 도에는 정해진 이름常名이 없고 성자에게는 정해진 예의常體가 없으니 방법에 따라 설교하여 중생을 면밀히 제도密濟群生할지어다라고 하였다. 대진국의 대덕 아라본이 멀리서 성경과 성상聖像을 가지고 경사京師에 와 헌상하므로 그 교지를 상고한즉 신묘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또 근본 교리를 살펴보니 생성에 관한 요령이 확립되고 경설經說에는 번잡함이 없으며 교리는 만사를 잊게한다理有忘筌.
만물을 제도하고 인간에 대한 이로움을 천하에 실행함이 마땅하니 유사有司는 즉각 장안 의녕방義寧坊에 대진사 1소를 건립하고 승 21명을 상주케 하였다. 비록 종주宗主였던 주가周家의 도덕은 상실되어 청우靑牛를 타고 서천西天으로 올라가 버렸으나, 당唐의 장도壯途는 빛나고 경교의 바람은 동방에서 일어났다. 유사에게 명하여 황제의 사진을 그려 사원 벽에 걸어놓으니 모습은 더더욱 빛나고 영채英彩는 경교를 비춰주니 성왕의 족적은 상서롭기만 하여 전우주法界를 영원히 빛내일 것이다.
서역도기西域圖記와 한漢, 위魏 제국의 사적에 의하면 대진국은 남으로는 산호의 바다를 거느리고, 북으로는 보물이 많은 산에 이르며, 서로는 꽃과 나무가 우거진 선경仙境을 바라보고, 동으로는 바람이 세차고 물이 적은 곳에 접해 있다. 그 땅에서는 화포火布와 환혼향還魂香, 명월주明月珠, 야광벽夜光璧이 산출되고 세간에는 도적이 없으며, 사람들은 안락평강安樂平康하고, 종교는 경교만이 행해지고 있으며, 군주는 유덕자有德者가 아니고서는 옹립되지 않으며, 영토는 광활하고 문물은 번창하다.
고종高宗 대제大帝는 조종祖宗의 황통皇統을 고스란히 계승하여 이 참종교眞宗를 윤택하게 하시었고 모든 주州에 각각 경교사景敎寺를 두도록 하고 아라본을 진국대법주眞國大法主로 모시도록 하시니 경교法는 십도十道에 퍼지고 나라는 부유해지고 백성은 편안해졌으며 사원은 수많은 성읍에 충만하여 가가호호는 큰 복이 은성殷盛하였다.
성력聖曆 연간 불교釋子가 동주東周에서 기세를 올렸고, 선대의 천자天子 말년에 서호西鎬에서 천민賤民,下士들이 경교를 크게 비웃으면서 흉보고 헐뜯었다. 그러나 승수僧首 나함羅含Lohan;Abraham과 대덕大德 급열及烈Cjilieh;Cyiacus 그리고 금방金方의 귀족들과 세속을 떠난 고승들이 공히 현묘한 강령을 진작시키고 함께 끊어진 유대를 다시 이으시었다.
현종玄宗 황제는 영국寧國 등 오왕五王들에게 명하여 행복의 집福宇에 친히 왕림하시어 제단을 세우도록 하시니 잠시 휘어졌던 법의 기둥은 더 높이 솟았고 일시 기울어졌던 도의 초석은 다시 바로 놓이게 되었다. 천보天寶 초 대장군 고력사高力士에 명하여 오대 성왕의 사진을 사내寺內에 안치토록 하시고 비단 100필을 하사하시었다. 뛰어난 계책睿圖을 받들고 경하하니 비록 성왕의 수염龍髥은 보기에 멀다 해도 궁검弓劍은 손에 닿을 듯하며, 햇빛이 퍼지니 성왕의 얼굴은 지척에 있는 듯하다. 3년 대진국 승 길화佶和는 별을 우러러 북상北上하고 해를 바라보며 지존을 따랐다. 승 나함과 승 보론普論Paul 등 17명에게 조서를 보내 대덕 길화와 함께 흥경궁興慶宮에서 공덕을 연수케 하고는 사寺의 제명題銘을 친히 쓰시어 정문에 걸어놓고 보옥으로 장식하니 붉은 노을처럼 작열하고 성왕이 명찰名札이 하늘 높이 걸려 있으니 빛남이 밝은 해를 능가한다. 황제의 성덕은 남산南山보다 높고 넘쳐흐르는 덕택은 동해와 같이 깊다. 무릇 도에는 불가함이 없으니 그 가可함으로 이름지어질 것이고, 성황은 하지 못하심이 없으니 그 하심이 기록될 것이다.
글이 밝으신 숙종肅宗 황제께서는 영무靈武 등 5군에 경교 사원을 더 지으시니 원래의 착함이 더 쌓여서 복문福門이 열리고 큰 경사를 맞이하시어 마침내 황제의 위업이 이룩되었다.
문무에 밝으신 대종代宗 황제께서는 성운聖運이 널리 퍼지어 만사가 형통하시었다. 해마다 성탄절에는 향품香品을 하사하시어 성공을 기렸고 어찬御饌을 베풀어 경교도들을 환대하시었다. 하느님乾은 아름다움과 이로움으로 능히 삶을 넓히시고 성왕은 근본元을 체현하므로 능히 화육化育,亭毒하실 수 있다.
현 건중建中 연간 문무를 겸비하신 성신황제聖神皇帝께서는 8수修의 선정善政을 펴시어 암우暗愚와 현명賢明을 가려내시고 9조條의 법규를 천명하시어 경교의 사명惟新景命을 새로이 하시고 현묘한 도리를 통달하시어 비행非行을 근절하시었다. 그의 마음은 크면서도 겸허하고 고요하면서도 너그러워 넓은 자비로 고생하는 중생을 구제하시니廣慈救衆苦 백성들에게 선덕을 베푸는 것은 수행의 대도大道 ,大猷이며 그들을 인도하는 한 단계階漸다.
비바람이 제때에 있고 천하가 안정되어 사람은 잘 다스려지고 문물은 청신淸新하며 산 자는 번창하고 죽은 자는 극락영생하며 생각念은 향응響應하듯 일치하고 정감은 성실함에서 생기나니, 이는 가히 우리 경교의 뛰어난 재능의 효험效驗이라 할 것 이다.
대시주금자광록대부大施主金紫光祿大夫이며 동삭방절도부사同朔方節度副使이고 시전중감試殿中監이며 자색가사紫袈裟를 하사받은 승 이사伊斯는 천성이 화평하고 시혜施惠를 즐기며, 도리를 청문聽聞하기만 하면 그대로 근행勤行하곤 하였다. 그는 멀리 왕사王舍의 성읍으로부터 마침내 내화來華를 하였으니 학술은 3대를 능가할 정도로 높고 예능은 완전무결할 정도로 넓었다. 당초 조정에서 충절을 바치니 기장記帳에 이름이 수록되기에 이르렀고, 중서령中書令 분양왕汾陽王 곽자의 공이 처음 삭방朔方에서 군사를 통솔할 때 숙종은 그로 하여금 곽자의를 호종扈從케 하시었다. 비록 그는 침소에 드나들 정도로 공과 친근하였지만 진중에서는 별상別狀을 자제하고 공의 손발이 되고 군의 이목耳目이 되어 녹祿과 하사품을 분급分給하니 가재家財 축적이란 없었으며, 은사恩賜의 주옥珠玉마저 되레 헌상하고 후무고사休務告辭로 받은 황금과 모직은 보시布施로 하였다. 또한 낡은 사원을 증축하여 법당을 넓히고 회랑과 처마를 숭엄하게 꾸며 마치 훨훨 나는 것만 같았다. 더욱이 이사는 경교에 몸바쳐 인仁으로 시은施恩하였으니 해마다 4사寺의 승도들을 모아 경건하게 행사하고 정성 들여 공양함이 50일이나 걸리곤 했다. 굶주린 자가 오면 밥을 먹이고 헐벗은 자가 오면 옷을 입혀 주며, 환자는 치료하여 회복시키고 사망자는 장례를 치러 안식하게 하였으니 청절淸節하다고 하는 사람들마저도 이러한 미덕을 들어본 바 없는데, 작금 평범한 경교 신도가 바로 그러한 사람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큰 비를 세워 삼가 다음의 송사頌辭로 미덕과 영광을 선양하나이다.
참된 주는 시원이 없나니 항시 정숙하고 자약自若하시며, 개벽開闢을 고안考案하고 화육化育하시며, 땅을 일으키고 하늘을 세우시었도다. 분신으로 강림하시어分身出代 제도함이 끝없으니 마냥 밝은 해가 떠 어둠이 가셔지듯 하나니, 이 모두가 참된 현묘玄妙를 증명함이라 할 것이다.
문덕文德이 혁혁하신 황제께서는 선대보다 탁월하시어 적시에 난을 평정하시고 하늘과 땅을 넓히시었다. 밝고 밝은 경교를 우리 당에 들어오게 하시고 성경을 번역하며 사원을 짓게 하시어 산 자와 죽은 자의 방주方舟로 삼으시니 만복萬福이 함께 이루어지고 만방萬邦이 평강平康하게 되었나이다.
고종高宗께서도 선업先業을 계승하시어 정교한 옥사屋舍를 건립하시니 궁전에 감도는 명랑함이 온 강토에 가득하고 참된 도가 명확하게 밝혀졌으며, 법주法主를 공식 임명하시니 사람들은 안락하고 평강하며 만물은 재앙과 고난이 없게 되었나이다.
현종玄宗께서는 신성神聖을 깨닫고 참된 정도正道를 닦아 수행하시니 황제의 방자牓子는 찬연히 빛나고 어서御書는 휘황찬란하며 초상은 주옥같이 빛나니 백성은 그이를 높이 공경하고 그이의 많은 공적은 한결같이 빛을 발하며 사람들은 그이의 경복慶福을 믿었나이다.
숙종肅宗께서 즉위하시니 천자의 위업은 고양되고 성자聖子는 일륜日輪처럼 마음을 펼치니 상서로운 바람은 어둠을 쓸어버리고 만복은 황실로 돌아오니 재앙은 영원히 사라졌나이다. 황제께서는 온갖 소요를 진정시키고 우리 중화中華 전역을 재건하시었나이다.
대종代宗께서는 인효仁孝 공의公義하시어 성덕盛德이 천지에 가득하시니 시물施物로 삶을 이루게 하시고 물자를 효용效用하시며, 향화香火로 공덕을 보상하시고 인애仁愛로 시제施濟를 행하시었나이다. 이에 태양이 동녘을 비춰 위덕威德을 가져왔고 달이 서녘에서 원만히 지었나이다.
건중황제建中皇帝께서 등극하시니 선조의 덕을 사모하시어 그를 기술하시고 무용武勇으로 사해四海를 숙청肅淸하시며 문치文治로 만방을 청신하게 하시고, 촛불로 사람들의 어두운 곳을 발게 비춰주시고 거울로 사물의 모습을 관찰하시니 천지사방六方이 밝게 소생하고 수많은 만인蠻人들이 이를 본받았나이다.
도道란 광대무한廣大無限함이니 그 감회 실로 깊을지어다. 이에 굳이 그 명칭을 언급하고 삼위일체를 널리 전하노라. 주께서는 만능하시고 신臣은 그를 기술할 수 있으니, 여기 큰 비를 새워 대길大吉,元吉을 삼가 송축頌祝하나이다.
대당大唐 건중建中 2년 신유년辛酉年 1월 7일
일요일大耀森文曰에 건립하다.
차시此時의 감독은 승僧 영서寧恕이니,
그는 동방의 경교도들을 알고 있다.
조의랑朝議郞 전행前行 대주사사참군
여수암呂秀巖 서書
조검교시태상어사자가사사 주승 업리主僧業利
검교건립비 승 행통僧行通
승 영보僧靈寶승 내등僧內澄승 광정僧光正 승 화명僧和明승 입본僧立本승 법원僧法源 승 심진僧審愼승 보령僧寶靈승 현람僧玄覽 승 경통僧景通노숙야구마老宿耶俱摩승 명일僧明一 승 보국僧保國승 지견僧志堅승 의제僧義濟 승 현덕僧玄德승 이용僧利用승 원?僧元□ 승 봉진僧奉眞승 지덕僧至德승 화광僧和光 승 경복僧景福승 태화僧太和승 숭덕僧崇德 승 덕건僧德建승 거필僧去甚승 광덕僧廣德 승 복수僧福壽승??僧□□승 보달僧寶達 승 ?명僧□明승 화길僧 和吉승 ??僧□□ 승 요?僧遙□승 일진僧日進??륜□□輪 승 ?화僧[這-言+(衣-■)]和승 숭경僧崇敬승 혜통僧惠通 승??僧□□?거신□居信승 문정僧文貞 승 문명僧文明승 소덕僧昭德승 요원僧曜原 승 인?僧仁□승 현진僧玄眞승 명태僧明泰 승 리?僧利□승 경덕僧敬德승 원?僧元□ 승 건?僧乾□승 수일僧守一승 광?僧光□ 승 문순僧聞順승 보제僧普濟승 응?僧凝□ 승 충화僧沖和승 영덕僧英德승 영덕僧靈德 승 영수僧靈壽승 환순僧還淳?경진□敬眞
後一千七十九年咸豐己未武林韓泰崋
來觀幸字畫完整重造碑亭覆焉惜故友
吳子苾方伯不及同遊也爲悵然久之 심
해설:
이 경교비에 나타난 용어는 불교, 유교, 도교의 대응술어對應述語로 적고 있다. 다음은 그 예이다.
삼위일체三位一體는 삼일묘신三一妙神으로, 천사天使는 신천神天으로, 육신강림肉身降臨은 동인출대同人出代 혹은 분신출대分身出代로, 동정녀童貞女는 실녀室女로, 팔복八福은 팔경八境으로, 부활승천復活昇天은 정오승진亭午昇眞으로, 구원救援은 제도濟度로, 종교宗敎 혹은 경교景敎는 법法으로, 주교主敎 혹은 감독監督은 법주法主로, 하느님은 건乾으로, 사원寺院은 법당法堂으로, 천지天地는 육합六合으로, 신망애 삼덕信望愛三德은 삼상三常으로, 칠일예배七日禮拜는 칠일일천七日一薦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용어의 혼용이나 차용으로 사경사불似經似佛 또는 불교의 옷을 입은 기독교라는 평판을 받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경교비 역시 하단을 구성하는 거북 좌대와 연꽃, 여의주는 불교에서, 상단의 십자가는 경교, 그리고 십자가를 둘러싼 비천상과 구름은 도교에서 빌려온 것이다. 경교의 이러한 타협성은 미사 전례 중에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고 성체와 성혈을 거양하면서 종을 치는 대신 목탁을 두드리고, 사원 안에 인물 초상화를 걸어놓고 조상을 숭배하는 절충주의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절충주의는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금기시하는 것이었다.
중국에 전래된 경교의 가장 취약점은 토착화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경교비 3면에 기록된 76명의 사제 전원이 한문으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토카라吐火羅나 페르시아에서 온 전도사들이란 점이다. 경교를 전래한 아라본으로부터 경교비가 세워진 시기까지 무려 150년이 지난 시점에서 당나라 사람으로 경교의 사제가 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점은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시 수만 명의 신도를 거느린 경교였지만 당나라 사람으로 경교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대부분은 서역에서 온 상인들이나 군인이 경교를 믿었다고 한다. 게다가 전교의 필수인 경전의 번역사업 또한 부진하였다. 경교의 이런 현상은 중국인들의 현세적인 종교관이나 인생관과는 많은 차이점을 보였기 때문에 경교의 중국인에 대한 선교는 한계성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수일, 문명교류사연구, 사계절, 2002년, pp77-108>
경교景敎의 출현 배경:
경교景敎는 5세기 초 동방교회의 수위권을 둘러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좌의 격렬한 권력투쟁과 그들을 떠받치고 있던 안티오키아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립에서 시작되었다. 428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가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키릴루스를 공격함으로서 양 진영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키릴루스와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그리스도 位格의 철저한 단일성과 신성을 주장하였다. 로고스가 人性을 마치 옷처럼 취했다는 것이다. 인성이 신성 안으로 스러져 ‘단일한 본성’ 즉 신성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으로 이 설을 단성설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마리아를 ‘하느님을 낳으신 분theo-tokos’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설은 좀 더 경건하고 민중들에게 친근한 해결책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와 안티오키아 학파는 본질의 단일성을 말하려 하지 않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구별을 철저히 고수했다. 이들이 이런 주장을 고수한 이유는 그래야만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간성이 보장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 학파에서 마리아를 ‘그리스도를 낳으신 분’ 대신에 ‘하느님을 낳으신 분’으로 부르는 것은 실제적인 복음 선포에서 웃음거리만 된다고 생각하였다. 네스토리우스의 추종자들이 주장한 이 설은 학문적으로 좀 더 확실한 해결책으로 여겨졌다.
이 둘의 주장은 타협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키릴루스에 의해 틀어지게 된다. 철저한 권력 정치가였던 키릴루스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선동과 조작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431년 키릴루스는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던 에페소 공의회에서 콘스탄티노플의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가 도착하기도 전에 네스토리우스와 안티오키아 학파의 신학을 단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공의회에서 키릴루스의 단성설 그리스도론에 입각하여 마리아의 칭호도 ‘그리스도를 낳으신 분’이 아니라 ‘하느님을 낳으신 분’으로 확정하였다. 여기서 정해진 이 교의는 오늘날까지 교회의 교의로 확고부동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키릴루스의 이런 행위에 네스토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역단죄逆斷罪와 역파문逆破門으로 응수하였다. 이에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433년 에페소에서 공의회를 열어 양측의 연합을 독촉했지만 실패하였다. 그리고 449년 에페소에서 다시 공의회가 열렸는데 이 공의회에서 키릴루스의 후계자이면 그에 못지 않은 권력욕을 가진 후임자 디오도쿠루스가 수도자를 선동하여 공의회 교부들을 폭행하고 안티오키아 학파의 주요 신학자들을 파면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보고를 받은 로마의 레오 교황은 이 공의회를 ‘강도들의 시노드’라고 지칭하였다고 한다.
이제 콘스탄티노플의 네스토리우스는 완전히 몰락한 것으로 보여졌다. 하지만 정치적 변화로 인해 상황이 반전되었다. 콘스탄티토플의 새로운 여제로 등극한 플케리아는 독단적이던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디오스쿠루스를 파면하기로 결심하고 451년 칼케돈에서 새로운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이 공의회에서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431년의 에페소 공의회만을 보편 공의회로 인정하였다. 칼케돈 공의회는 4차 보편 공의회로 꼽힌다. 여기서 디오스쿠루스는 굴욕적인 심리를 거쳐 파면되었다. 황제는 이 사건을 거치면서 공의회를 통해 자신의 언명을 공의회에 명령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 결과 키릴루스의 입장도 네스토리우스의 입장도 아닌 서방의 교부들인 테르툴리아누스, 노바티아누스, 아우구스티누스의 서방 라틴 그리스도론이 부각되었다.
‘동일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에 있어서도 완전하시고 인성에 있어서도 완전하시며, 참 하느님이요 참 인간이시다.’ 동일한 그분은 ‘신성을 따라서는 성부와 본질이 같으시고, 인성을 따라서는 우리와 본질이 같으시다.’ 그러므로 ‘동일한 그리스도는... 두 본성 안에서 뒤섞이지도 뒤바뀌지도 나누어지지도 갈라지지도 않고 존재하신다.’ 이 유명한 네 수식어는 알렉산드리아의 급진파-뒤섞이지도 뒤바뀌지지도 않음-와 네스토리우스-나누어지지도 갈라지지도 않음-를 다 함께 겨냥하고 있었다. 이 공의회는 라틴 그리스도론에 의해 꼴지어진 정식들을 받아들인 셈이 되었다. 그러나 칼케돈 공의회는 새 로마인 콘스탄티노플의 거룩한 교회에게 옛 로마와 동등한 수위권을 부여하였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다섯 총대주교좌 제도가 확립되었다. 그 서열은 로마-새 로마인 콘스탄티노플-알렉산드리아-안티오키아-예루살렘이었다. 예루살렘이 꼴찌라는 점이 의외이긴 하지만 이 틀은 앞으로도 그대로 유지되게 된다.
칼케돈 교의를 둘러싼 그리스도론 논쟁은 이후 정치 외교와 깊이 연관되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갈라지는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서방 신학에 의해 꼴지어진 칼케돈 공의회를 인정하지 않는 ‘칼케돈을 부인하는 교회들-이집트의 콥트교회, 시리아의 네스토리우스 교회, 아르메니아 교회, 게오르그 교회-이 존재하게 된다.
<한스 큉/이종한역, 그리스도론, 분도출판사, 2005년, pp252-263>
이 가운데 네스토리우스를 추종하는 무리들은 박해를 피해 시리아, 페르시아를 거쳐 중국에까지 진출하였다.